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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4/30 국제신문 회장님 기사 보도 공지
이 름 국술원 아이피 121.150.***.250
작성일 2010년 5월 4일 11:28:14 조 회 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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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용
무인의 혼 사람의 길을 묻다 <3> 서인주 국술원 회장
사람이 사람의 기본을 지켜야 하듯 무인에겐 '무인의 길'뿐이다
궁중무술 불교무술 사도무술… 세 가지 전통무술 되살려 부산서 출발
맨손 무술과 무기술 등 기술만도 4000여 수

- 육체와 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
- 무술의 생활화를 하는 이유이죠
- 가장 힘든 것이 뭐냐고요? 결국 정신수련이 아닐까요

 
국술원의 서인주(61) 회장은 단호했다.

"정신을 먼저 닦고 신체를 단련하는 무예인은 이해관계를 다투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특히 삶과 죽음을 다루는 종교와는 무관해야 합니다."

한국 전통무술인 국술이 세계 44개국에서 300만 명 이상의 무술인구를 거느리게 되는 등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이유는 그렇게 간단했다.

서 회장은 지금도 국술의 세계화를 위해 미국 등 외국을 넘나들며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그동안 70여 나라를 방문했다. 그 결과 "잘사는 나라에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고 한다. 선진국으로 알려진 곳에서는 '인간의 기본을 지키더라'는 것이다.

세계국술협회 부총재로도 활동하고 있는 서 회장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선명하다. "무인은 무인의 길만 가야 합니다."

국술은 궁중무술, 불교무술, 사도무술(무인 가문이나 사대부 가문에서 전통적으로 전수되어 온 무술) 등 우리 민족의 세 가지 전통무술을 되살려 무예로 체계화한 것이다. 1958년 우리 민족의 전통무술을 집대성한 국술은 1961년 정식 무술단체로 인정받고 이후 세계인의 심장을 뒤흔든 한국의 전통무술로 자리 잡았다.

■국술의 탄생지는 바로 부산

 
  국술원의 서인주 회장이 국술의 고난도 기술 중 하나인 검술 시범을 직접 보이고 있다.
서 회장은 국술의 창시자인 서인혁(71·현재 미국 후스턴 거주) 세계국술협회 총재의 친동생이다. 그는 1949년 경북 군위에서 5남 4녀의 형제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큰형은 1950년대 전국적인 씨름 선수로 명성을 날린 서인석(2006년 작고) 씨로 선천적으로 '운동'과는 인연이 많은 집안의 태생이었다. 서 회장은 자연스럽게 9세 때부터 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국술을 창시한 형을 따라 부산으로 내려왔지요." 그는 1970년부터 해병대 제2사단과 해병간부사관학교 무술교관으로 활동하다 1973년 부산 해운대에서 국술 도장을 열었다. 그의 형 서인혁 총재가 1950년대 부산에서 자그마한 간판을 내걸고 전통무술의 복원에 힘을 쏟은 뒤 국술이 한국 땅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였다. "첫 출발지는 동광동 5가 36번지. 아직도 그 지번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국술은 맨손 무술과 무기술 등 그 기술이 무려 4000여 수에 이른다. 그 많은 기술은 우리 전통무술에서 나왔다. 그렇지만 단순히 싸움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1973년 해운대 40번 버스 종점 부근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서 회장은 해운대 도장을 처음 열 시절 이른바 '텃새 주먹'들을 떠올렸다. 1층은 중국집, 2층은 동백다방, 3층은 도장. 당시 해운대 주먹쟁이들은 3층을 수시로 찾아와 무던히 괴롭혔다. 그래도 싸움을 절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훗날 서 회장의 친구가 되었다. 무인의 절도된 행동의 결과다.

'언제까지나/언제까지나/헤어지지 말자고//맹세를 하고/다짐을 하던/너와 내가 아니냐'. 2000년부터 대구를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고 있는 서 회장은 '제2의 고향' 부산에 내려오면 손인호의 노래 '해운대 엘리지'를 꼭 부른다.

그렇게 국술은 국내에 뿌리를 내렸다. 서 회장은 1978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국술의 세계화에 앞장선 것이다. "1980년 어렵게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 도장을 열었지요. 흑인 동네였습니다. 무시무시한 일도 많았지요." 서 회장이 버클리 도장을 개장한 초기 이런 일이 있었다. 하루는 키가 2m를 훌쩍 넘는 반바지 차림의 한 흑인이 찾아와 "내가 당신의 무술을 이해할 수 있도록 보여달라"며 무지 큰 오른손으로 서 회장의 목을 휘어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방어를 요구했다.

 
  부채술
"방어고 뭐고 간에 죽는 줄 알았어요." 키 165㎝ 안팎의 작은 체구인 서 회장은 흑인의 손힘이 어찌나 센지 숨이 턱 막혔다고 한다. 숨이 넘어가는 순간 흑인의 '그 큰 낭심'을 발견한 서 회장은 앞차기로 후려친 뒤 팔을 확 꺾었다. 흑인은 나뒹굴었다. 마침내 "좋다"는 반응을 보인 흑인은 그 자리에서 200달러를 지불하고 입관했다. 그가 바로 당시 미국의 프로미식축구단 오클랜드 레이더스의 유명한 수비수 조 몰간이었다. 부상을 입고 재활 중이었던 조 몰간 덕에 버클랜드의 국술 도장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1985년부터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군인 거주 지역에서 국술원 도장을 운영할 때는 결투 신청을 100번 이상 받았다. "총 세례를 받을 뻔한 적도 있었어요." 이번에는 백인들의 방문이 잦았다. 서 회장과 겨뤄보고 싶은 그들 중에는 "살기가 돌더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저돌적인 사람도 있었다. "할 수 없이 격투 자리에 변호사와 경찰관을 입회시켜 결과에 문제를 삼지 말자고 했지요." 막상 경찰이 오니 격투를 신청한 백인은 물러섰다고 한다. 이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진정한 무인의 정신은 그렇다.

미국 해병훈련소의 특별초청교관을 역임하고 1998년에는 미육군사관학교 지휘검까지 수상한 서 회장의 국술 세계화 작업 과정은 초기에는 험난했지만 곧 유럽 등지로 퍼졌다. 지금은 태권도 다음으로 전 세계에 퍼진 우리의 전통무술이 되었다. 싸움이 아닌 우리의 전통문화를 전 세계에 알린 것이다.

국술은 1981년 탄생지인 부산에서 첫 세계대회가 열렸다. 구덕체육관에서 출발한 세계국술대회는 매년 미국에서 열리고 있으며, 3년과 5년을 주기로 종주국인 한국에서 개최된다. 2005년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29개국 국술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세계국술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오는 2012년이나 2013년 부산 BEXCO에서 열릴 예정인 세계대회에는 현재 유럽에서만 1720명이 참가 의사를 밝히는 등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부산은 세계적으로 국술의 메카인 것이다.

■무술은 웰빙…육체와 정신적 건강의 조화

 
  호신술
서 회장은 전국적으로 140여 개의 국술원 도장을 개장했다. 부산에는 46개가 있다. "모든 도장의 도복과 기술이 통일되어 있습니다." 도복은 검은색이다. 자연스럽게 국술인들의 정신도 통일된다는 것이다. "운동이 강하지 않고 부드러운 점이 특징입니다." 이는 국가 사업으로 세계화한 태권도와 달리 35년 동안 세계 무대에서 국술이 각광받은 매력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서 회장은 그러면서 몸과 마음의 상호 조화를 강조했다. "결국 정신 수련이 가장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몸 운동은 배짱을 키우고, 눈에 힘을 불어넣지만 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뜻일 게다. 그는 명상을 위해 수시로 자연을 찾는다. 2001년과 2002년에는 설악산 백담사에 거주했고, 인도에서 9개월 동안 수련한 적도 있다.

서 회장도 한 인간으로서 '외도'를 하기도 했다. 영화계를 기웃거린 것이다. 미국에서는 영화제작에도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어쩌면 유명 영화의 액션 배우로도 출연한 것 같은데 본인은 웃기만 했다. 서 회장은 홍콩의 유명 배우 성룡(56·잭키 찬)과는 절친한 사이다.

"외국에서 무예인으로서 당당히 대접을 받는데 유독 한국에서는 제 명함을 잘 보여주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무술을 한다는 것에 대해 거리감을 두는 것 같아요." 그도 한국에서 무술의 인기가 떨어지는 점에 대해 마음이 아리다. 무술은 운동 그 자체다. 그래서 중학생만 되면 보통 '운동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한국적 풍토'가 안타까운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린이들만 무술을 하는 것으로 여기지만 미국만 해도 어린이는 30%도 되지 않아요. 45%는 여성들입니다." 서 회장은 무술을 생활화하고 있는 외국의 사례를 어렵게 들었다.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잘 먹고, 잘 살고, 잘 죽겠다'는 것이 무술을 하는 이유다. 우리 사회에서 한때 유행했던 '웰빙(well-being)'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랬다. 이 무인은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삶의 유형이나 문화를 일컫는 개념'인 웰빙을 무술로써 생활화하고 있는 것이다.


◇ 국술원 맹세

1. 나는 국술원 회원으로서 회칙을 준수하며 무사도 정신을 발휘할 것을 맹세한다.

2. 나는 애국 애족하며 국제 간의 친선 도모는 물론 많은 일에 성실 근면하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사회의 번영과 발전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노력한다.

3. 나는 정치적인 문제에 관여하지 않으며 종교나 파벌을 초월하여 신의와 우정으로 각계각층의 선량한 국제민들과 협력한다.

4. 나는 이와 같은 정신으로 복지 사회 건설에 적극 참여하고 나아가서 세계 평화 달성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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